빵을 굽는다는 것은 반죽 과정에서 밀가루의 질감에 대한 촉각과 더불어 정확한 시점에서 멈추는 감각과 오븐에 들어갔을 때 빵이 구워진 냄새로 그 익은 정도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후각 등 총체적인 신체 감각을 요한다. 정확한 레시피를 수행하는 제빵의 세계에서 숙련자는 신체의 움직임에 꽤나 고단한 노동력을 기반하는 몸짓과 빵이 익는 적정 시점의 색을 파악하는 시각적인 측면에 앞서 후각으로 파악하는 기술이 필요 조건으로 작동한다. 독특하게도, 요리와 다르게 베이킹의 세계에서는 ‘레시피’라는 표현보다 ‘포뮬러(formula)’라고 지칭하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이는 원소에 무게를 싣게 됨으로써 재료의 근본적인 속성을 해부하고 새롭게 직조하는 태도가 우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멜로디박은 페인터이기 전에 제빵사 즉, 빵과 케익을 굽는 베이커였던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어 그런지 둘의 공통점에 반응하여 회화적 탐구에 몰두한다.
멜로디박의 회화는 어느 뜨거운 여름 날에 표면이 살짝 데워졌으나 물에 들어가면 시원한 야외 수영장, 사물의 실루엣, 혹은 흰 콩으로 만든 거품을 올려놓은 에스푸마, 새콤하면서 달달한 레몬 소르베, 그리고 서로 절대 섞일 수 없는 마요네즈와 퐁듀 등 페인터와 요리 연구가를 떠오르게 하는 두 가지 면모를 보여준다. 시각과 후각 촉각 등의 감각들 이전에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의 작업실에 늘어져 있는 작은 정방형 캔버스 위에 컬러칩들과 색의 두께를 기록한 두툼한 책이다. 레시피를 연상하게 하는 이 책은 색과 질감에 관한 드로잉 북이라 해도 무방하다. 작가는 물감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점성이 다른 특성과 농도에 따라 색의 두께가 달라지는 것을 인식하며, 그에 따라 건조되었을 때 갈라지거나 유지되는 상태가 제 각각인 정도를 개별적으로 실험하고 기록한다. 건조되는 속도가 빠른 코발트 블루와 달리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티타늄 화이트는 굉장히 느리게 건조되는 등 색이 물과 기름, 공기와 반응하는 특성에 몰두한다. 각각의 농도와 두께를 촬영한 이미지 필름을 낱장에 붙여가며 날짜를 기록했던 칼라 레시피는 사실상 색 자체보다 색을 만들고 싶다는 기본적인 작가의 색에 대한 연구자의 면모와 욕구가 담겨있다. 색의 변조 속에서 도출된 질감과 형태를 개별적으로 기록해왔던 멜로디박의 드로잉 북은 빵이 밀가루와 계란 노른자, 물인 상태 즉, 반죽 이전의 상태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반죽을 실험해 보고 최적의 상태를 발견해 나가는 태도와 유사하다.
묽은 물성에 대한 실험은 투명도 혹은 빛이 투과되는 물리적인 감각을 상상하는 것을 근간에 둔다. 묽은 것과 두꺼운 것이 한 화면에 섞였을 때 단차를 다르게 두고 직관적으로 실험해 나가는 작가는 그 과정에서 즉흥성이 동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료의 비율을 통해 사용할 색의 범위를 정확하게 제조해 나간다. 기본적으로 물감보다 테레핀의 비율을 높게 설정한 배합은 가능한 묽은 점성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려는데 있으며 캔버스 위에 얇게 펴 바르므로 그 두께와 결을 더욱 섬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그 바탕에는 작가가 기본적으로 색마다 다른 속성을 갖고 있는 재료의 화학적 반응에 주목하는데 있다. 예컨대, 회화의 평면성은 매체가 갖고 있는 물질적인 이차원성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감각의 한 관점에서 인식할 수 있도록 평면을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 촉각 등 여러 촉지적 감각들이 공존하도록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물감 자체의 덩어리 혹은 표면을 다루기보다 캔버스 위에 재료를 굉장히 묽고 얇게 바르거나 그리면서 물성의 두께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도록 소거해 나가는 방식을 택한다. 또한, 색의 층위와 질감의 재현에 의해 두드러지는 원초적인 상태에 가까운 멜로디박의 회화는 여전히 회화의 불가분한 매체적 조건이자 회화의 표현 가능성과 가치를 담보해주는 매체적 조건에 가깝다. 여기서 작가는 회화의 고유한 조건인 평면을 유지하면서도 회화가 더 많은 표현 가능성을 화면 안에서 구성하고 있는 재료의 입자들을 앞세우며 물리적 매체가 갖는 고유한 감각을 대상과 결합된 하나의 연속체로써 바라본다.
멜로디박이 물감의 입자를 다루기 전에 세룰리안 블루, 실버, 화이트, 레뒤시 바이올렛, 카멜리아 레드 등의 색을 선택하게 되는 계기는 일상에서 눈에 밟히는 사소하게 큰 면적과 부피의 색이 펼쳐지는 인간이 정해 놓은 형태에서 비롯된다. 그의 회화는 구조적이지만 평평하게 감지할 수 있는 거대한 형태에 색이 입혀지는 회화적인 풍경을 연상케 한다. 예컨대, 작가는 바닷가 근처에 있는 수영장이 담고 있는 구조와 형태, 그리고 하늘의 수평적인 방향과 맞닿아 있는 옥상 수영장 등 인공적이고 자연적인 색이 중첩되는 절묘한 순간의 풍경에서 직관적으로 발견한다. 나아가, 이러한 감각은 재료의 화학적이고 물리적인 입자의 실험을 통해 기억에 담아두었던 심상을 연상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색의 발색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에서 비롯된다. 색을 제조하고 특정 도구와 신체가 개입된 움직임의 영역은 작가가 상상할 수 있는 회화적 풍경을 담기 위해 서로 다른 속성의 재료를 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요리를 탄생시키거나 발효시키기 위한 반죽의 과정과 유사하게 흘러간다. 이처럼, 멜로디박은 질감과 색을 연결하는 감각은 유화, 목탄, 오일 바, 오일 파스텔, 왁스, 연필, 분말 입자 등을 이용해 재료의 근본적인 특성에 맞는 기법적인 표현을 살리고자 한다. 예컨대, 그의 회화적 태도가 분자 요리학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회화 작가와 다소 다른 작업실 풍경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어느 화학자 혹은 어느 요리 연구가의 연구실처럼 물감 튜브보다 고체와 분말 물감이 즐비해 있으며, 그리기의 다양한 실험을 위해 붓 외에 낯선 형태의 그리기 도구들과 색의 질감을 테스트한 정방형 캔버스들이 사방을 둘러싸여 있다.
분자 요리학을 예로 들자면, 이는 음식의 질감과 조직, 그리고 요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새로운 맛과 질감을 개발하는 태도로 접근하는 미시적인 요리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재료와 조리 과정을 분자 단위로 보고 굽고, 조리고, 익히는 과정에서의 변화를 포착하면서도 원재료 고유의 맛과 향을 전달하는데 집중한다. 조리하는 온도와 방법에 따라 재료의 분자 배열이 변하는 등 식재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요리 방식은 화학물질들의 혼합물로 바라보고 결과적으로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성질, 맛, 향, 질감, 색 등을 재구성하여 “맛의 부피를 늘리는데” 있다. 이같은 태도는 멜로디박이 페인팅을 완성하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마치, 근의 페인팅에서 지각할 수 있는 색의 질감, 형태, 화면 구성은 안료와 배경과 같은 모든 물질에서 분자라는 아주 작은 파편들이 모여 구현되는 것과 같다. <A Pool of Sunlight>(2022), <How Are You>(2022), <Ping-Pong-Ping-Pong>(2022) 등은 독특하게도, 형태 간에 크기와 거리, 색채와 움직임 등 시각적 속성에 어떤 왜곡을 의도적으로 가하는 것과 색을 중심으로 화면에서 발생하는 안과 밖 등 색과 모양이 두 개의 상태 또는 하나의 관점에서 관철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특히, 동글동글한 작은 크기의 스펀지를 막대기에 연결해 화장하듯이, 혹은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지워내듯이 톡톡 그려내는 것을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색을 캔버스 아래로 흡수시키려는 동시에 표면 위에만 안착시키거나 드로잉 하듯이 가늘고 옅게 그려내는 등 다양한 기초적인 태도를 구사한다.
이와 같이, 해체와 재조합을 통한 멜로디박의 추상 회화의 해석은 식재료를 갈아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특정 분자 요리들을 상상하게끔 한다. 이와 더불어, 먹는다는 본능적인 행위보다 ‘만들기’ 즉, 페인팅에서의 가장 기초적인 것을 해부하는 태도는 무엇을 그릴 것인지 혹은 어떤 대상을 관객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할지가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재료적 물성을 탐구하고 화학적 변화에 주목하는 멜로디박의 회화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들이 물감의 농도와 질감을 탐구하는 안료에서 출발함으로써, 자연에서 유추할 수 있는 본연의 색을 모색하는 것과 도구를 통한 그리기의 태도에 주목한다. 동시대 회화에서 회자되어지고 있는 지지체, 재료, 도구 등은 회화를 구성하는 물성을 회화의 영역에서 탐구하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대체로 스크린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액체성과 표면을 다루거나, 이를 중심으로 보다 물성으로 향하거나 의식적으로 탈-회화에 집중한다면, 멜로디박은 디지털 이미지에 의존하는 동시대성을 지양하고 당신의 기억과 경험의 감각에 기대어 그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체화된 감각의 본능을 화면에 담으려 한다. 그는 회화의 틀과 이미지에 따른 동시대의 관습적인 조건과 거리를 두고, 새로운 형식을 찾는 과정보다 회화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기초적인 언어에 몰두하려 하며, 재현의 방법론보다 작가가 갖고 있었던 독특한 경력을 통해 신체에 각인된 가장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행위의 맥락을 회화 형식에 대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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